투게더 - 첸 카이거

투게더. 내가 소싯적에 좋아하던 아이스크림의 이름이다.
이 아이스크림을 다이제스티브에 발라서(?) 먹으면 맛이 제법이었다.
이 투게더 아이스크림은 범용성(?)이 뛰어났는데, 커피에 넣어도, 그냥 먹어도, 팥빙수에 넣어도 제법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이 아이스크림의 CM송이 '엄마 아빠도 함께~ 투게더~ 투게더~' 뭐 대충 이랬던것 같다...

영화에 투게더란 제목을 가진 영화가 있다. 그다지 Impressive하지는 않은 영화지만 그래도 봐줄만한 영화라고 생각된다...
영화의 큰 줄거리는 시골의 소년이 바이올린에 재능이 있어서 아버지와 함께 (친아버지가 아닌) 도시로 상경해서 바이올린을 배우다가 겪는 이야기, 그리고 결국은 아버지의 부성애를 알게 된다는 비교적 단순하고 신파적인 이야기이다.
감독은 첸 카이거. 첸 카이거의 '패왕별희'를 매우 감명깊게 본 나로서는 투게더를 보면서 '첸 카이거'가 철이 든건가? 아니면 돈이 떨어졌나?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상당히 대중적인 영화이다. 장이모, 첸 카이거 등이 일반적으로 중국 영화를 크게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평을 받는데, 장이모의 '영웅'이 지나친 주제의식으로 실망감을 주었듯이 투게더 역시 첸 카이거의 변신(?)이 다소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도 영웅보다는 이 영화가 훨씬 좋다)

바이올린을 다룬 음악 영화 중 대표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이 투게더 외에 '레드 바이올린'이 있는데, 이 두 영화를 비교하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된다. 전자는 바이올린이 중심이 된 이야기 전개이고, 후자는 소년과 그 주변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 전개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놓고 본다면, 전자가 더 나은것 같다.
투게더에 나오는 곡들은 차이코프스키, 파가니니, 브루흐, 시벨리우스, 리스트 등의 곡들이 있는데, 가장 감동적인 곡 (클라이맥스에서 쓰인)은 차이코프스티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의 3악장 피날레이다. 개인적으로 이 곡을 무척 좋아하기도 하고, 또한 영화와 비교하면 곡 선정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by Paribus | 2010/02/23 00:54 | Darkside of the Moon | 트랙백 | 덧글(1)

귀거래사 - 도연명

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旣自以心爲形役

奚추창而獨悲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實迷途其未遠

覺今是而昨非

舟遙遙以輕야

風飄飄而吹衣

問征夫以前路

恨晨光之熹微

乃瞻衡宇

載欣載奔

童僕歡迎

稚子候門

三徑就荒

松菊猶存

携幼入室

有酒盈樽

引壺觴以自酌

眄庭柯以怡顔

倚南창以寄傲

審容膝之易安

園日涉以成趣

門雖設而常關

策扶老以流憩

時矯首而遐觀

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

影예예以將入

撫孤松而盤桓

歸去來兮

請息交以絶遊

世與我而相違

復駕言兮焉求

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

農人告余以春及

將有事於西疇

或命巾車

或棹孤舟

旣窈窕以尋壑

亦崎嶇而經丘

木欣欣以向榮

泉涓涓而始流

善萬物之得時

感吾生之行休

已矣乎

寓形宇內復幾時

曷不委心任去留

胡爲乎遑遑欲何之

富貴非吾願

帝鄕不可期

懷良辰以孤往

或植杖而耘자

登東皐以舒嘯

臨淸流而賦詩

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

돌아가야지

논 밭이 묵고 있으니 어서 빨리 돌아가야지

마음은 스스로 몸의 부림 받았거니

혼자 근심에 슬퍼하고 있겠는가

지난 날은 다시 되 돌릴 수 없으니

앞으로는 후회 하는 일 없으리라

길을 잘 못 들었으나 아주 멀지는 않다

지난 시간은 후회지만 이제부터 바르리

고운 물결 흔들흔들 배를 드놓이고

바람은 가벼이 불어 옷자락을 날리네

지나는 이에게 앞길 물어 가야 하니

희미한 새벽빛에 절로 한숨이 나네

어느 덧 저 멀리 집이 바라다 보이니

기쁜 마음에 달리듯이 집으로 간다.

사내아이 종 나와 반가이 맞이하고

어린 아들 문 앞에 기다려 서 있네

세 갈래 오솔길에 잡초 우거졌어도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남아 있네

어린 아들 손잡고 방으로 들어서니

항아리 가득히 술이 나를 반기네

술병과 술잔 끌어당겨 혼자 마시며

뜰의 나무를 지그시 보며 미소 짓는다

남쪽 창에 기대어 편하게 있노라니

작은 방이지만 안락하기 한량없다

정원은 매일 거닐어도 풍치가 있고

문은 나 있으나 늘 닫아 두고 있다.

지팡이 짚고 가다가는 쉬기도 하고

때로는 머리 들어서 멀리 바라보네

구름은 무심히 골짝을 돌아 나오고

날다 지친 저 새 돌아올 줄을 아네

저 해도 어스름에 넘어가려 하는데

서성이며 홀로 선 소나무 쓰다듬네

돌아왔네

사귐도 어울려 놀음도 이젠 그치리

세상과 나는 서로 어긋나기만 하니

다시 수레에 올라서 무엇을 구하겠는가?

친한 이웃과 기쁘게 이야기 나누고

음악과 글을 즐기며 시름을 잊으리

농부가 나에게 봄이 왔음을 알리니

서쪽 밭에 나가서 일을 하여야겠네

때로는 천막을 두른 수레를 몰아서

혹은 외로운 배의 삿대를 저어서

깊고 굽이져 있는 골짝을 찾아가고

험한 산길 가파른 언덕길을 지나네

물오른 나무들은 꽃을 피우려 하고

샘물은 퐁퐁 솟아 졸졸 흘러내리네

모두가 철을 만나 신명이 났건마는

나의 삶 점점 더 저물어 감 느끼네

다 끝났네

세상에 몸이 다시 얼마나 머무르리

가고 머뭄을 자연에 맡기지 않고서

어디로 그리 서둘러 가려 하는가

부귀는 내가 바라던 바도 아니었고

신선 사는 땅은 기약할 수 없는 일

날씨 좋기 바라며 홀로 나아가서는

지팡이 세워두고 김 매고 북돋우네

언덕에 올라가서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가에 앉아 시도 지어보네

자연을 따르다 죽으면 그만인 것을

천명을 누렸거늘 더 무엇 의심하리

by Paribus | 2010/02/23 00:48 | Discourse on Life | 트랙백 | 덧글(0)

Slow Down Blues - Joe Satriani

Slow Down Blues – Joe Satriani

조 사트리아니. 20세기를 대표하는 키타 리스트 중 한명이다. 실용음악계에서 거의 최고로 알려진 버클리 음악원에서 공부하고 블루스와 락, 퓨전 재즈까지 모두 섭렵한 인텔리 음악가이다. 유명한 Steve Vai의 스승이기도 하면서 메탈리카의 Kirk Hammet도 그의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키타의 원로인 Jeff Beck 역시 그에게서 도움을 받을 정도라고 한다...
이 곡의 도입부는 블루스 풍으로 시작을 한다. 어쿠스틱의 사운드로 잔잔하게 시작을 하면서 재즈 풍의 인트로로 시작을 한다. 느린 스윙박으로 시작을 해서 토션을 강하게 걸고 동일 프레이즈를 이어가며, 곡의 형식은 A-B-A-A’로 전개된다. A’는 보다 빠른 스윙박자로 흥겨운 느낌이다. 키타는 굉장히 강한 토션으로 강렬한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곡의 말 그대로 스윙풍을 절대로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이 곡의 전체적인 느낌은 ‘혼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블루스-스윙재즈-퓨전이랄까? 참으로 사트리아니는 특정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절묘하게 자유자제로 곡을 만들어가는 것 같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자유스럽게 흔들리는 몸과 느낌, 그리고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아쉬운것이 있다면 주제의 베리에이션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인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절묘한 키타는 그 단점을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는다.
이 곡은 술이 약간 알딸딸 할 때 몸이 저절로 음악에 반응할 때가 적격...

by Paribus | 2010/02/23 00:42 | Darkside of the Moon | 트랙백 | 덧글(0)

Midnight Blues - Snowy White

Midnight Blues – Snowy White

Midnight Blues란 재목을 가지고 있는 곡은 꽤 많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깊은 밤과 블루스라는 것이 궁합이 잘 맞나보다. 이 곡 외에 Gary Moore의 곡도 있고 ELO의 곡도 있다. 3곡 모두 다 길이 남을 명곡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Snowy White의 Midnight Blues를 가장 좋아한다. Snowy White란 원래 동화 백설공주의 재목 중 일부(?)이기도 한데...
이 곡은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이다.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정말 뭐라고 표현 못할 감동(?)을 받았는데... 원래는 한국에서 내가 곧잘 가던 바가 있었는데 그 바의 주인이 제게 추천했던 곡이었다. 그래서 듣게 되었지만...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지극히 ‘절제’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한국인의 정서와도 잘 맞는지도 모른다. 한국인의 정서 중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한(恨)”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곡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가 ‘우수(憂愁)’라고도 한다. (그래서 차이코프스키의 곡들이 한국인의 정서에 잘 맞는다고도 하고..) 그런데 이 곡 역시 그런 분위기 이다. 초반의 전자 오르간 인트로부터 시작해서 토션을 아주 약하게 하고 드라이브만 걸고 연주하는 키타. 그리고 힘이 빠진듯 하면서 우수에 깃든 노래가 시작을 이끈다. 곡의 전개는 이후에 짧은 노래가 끝나고 흐느끼는 듯한 키타 솔로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부분부터 정말 절제되어 있는 키타의 절묘한 멜로디가 나오고...
주로 왼손 핑거링에 의한 연주인데 쵸킹과 해머링-풀링의 레가토 위주의 연주인것 같다. 그러면서 절대로 감정을 오버하지 않고 곡을 이끌어 간다. 같은 풍의 연주자들은 간혹 감정을 오버하는 경우가 있는데(특히 게리 무어...반대로 스티브 레이 보언이나 리 리터너의 경우는 감정을 잘 절제한다) 이 곡은 정말 흐느끼는 듯한 흐름을 이어간다. 후반부에 들어가면서 신서사이저가 받아서 연주를 이어 가는데 이 부분이야 말로 이 곡의 절정이다. 기교 없이 흐르는데로 흘러가는 연주. 그러다가 키타와 병주를 하게 되는데 이 때는 그동안 맺혔던 한을 일시에 풀어내는 듯이 소리를 쏟아낸다. 키타 역시 토션을 높이고 소리를 보다 더 날카롭게 해서 흐느낌에서 통곡으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고... 그러면서 곡은 끝을 맺는다. 전체적으로는 Dm 스케일인데 특히 절묘한 반음과 레가토의 사용으로 인해서 곡을 절제되었으면서도 충분한 감정의 이입이 이루어지며 곡의 흐름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 같다.
비가 오는 밤. 아니면 너무 조용해서 회상이 떠오르는 밤. 그런 분위기에 아주 걸맞은 곡. 물론 그 옆에 맥주나 소주, 사케가 있으면 더욱 안성맞춤일 듯...
절제된 감정으로 깊은 슬픔을 연주하는 哀而不悲 같은 곡이다.

by Paribus | 2010/02/23 00:38 | Darkside of the Moon | 트랙백 | 덧글(0)

다시 시작

글쟁이는 어쩔 수 없나보다...
입으로 배설할 것인지, 손끝으로 배설할 것인지, 아니면 배설 그 자체의 의미처럼 배설할지...
어디로 배설할까의 차이일 뿐.
카타르시스의 욕구는 그 자체로 본능인가보다.
아직 항문기를 완전히 지나지 못한것일까? 아직 내재되어 있는 것일까?

이전에 하던 블로그를 폐쇄한지 2년만에 다시 블로그질을 시작한다.
매너리즘에 빠지지말고...
형식주의에 빠지지말고...
다시 시작해보자...

09.12.08

by Paribus | 2009/12/09 21:29 | Discourse on Lif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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